AFRICA/케냐

[케냐 나이로비 ①] 난 아프리카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꺼야!

Joy_girl 2011. 12. 2. 00:46

 새벽 4시반, 케냐 나이로비 공항

<아프리카 신여성, 파울린과의 만남>

한동안 까맣게 잊혔던 냄새나는 푸세식 변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조한 바람과 흙먼지들, 쾌쾌한 매연이 콧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에이즈에 걸려있고, 한국인 여행자 5명중 4명은 말라리아 걸려 돌아오는 곳.
그러나 광활한 세렝게티와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 그런 자연과 사람의 어울림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여행 시작 전에는, 꿈도 꿔보지 않았던 아프리카가 지금 내 발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

새벽 4시 34분.

나이로비 공항. 여기가 공항인지 아니면 지하철 지하상가인지 모를 정도로 작은 규모.
공항 안에서조차 더운 흙냄새가 내 온몸을 자극한다.

케냐비자 : 도착발급. 싱글, 더블 관계없이 50불 (90일 유효) 2011.10.

어느덧 7시.

6시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파울린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공항 밖을 나가면 누군가 우리 이름이 떡하니 들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녀의 전화번호조차 적어놓질 않았으니..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컴퓨터를 잠시 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이 담당 여성분,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사파리를 할건지, 남편이 있는지(너 완전 어려보이는데 남편이 있다고! 이러면서), 나중엔 ‘조이 조이~’ 하면서 이름까지 불러주며 친구는 찾았냐고 관심 가져준다. 이 여자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순간 내가 아프리카에 왔음을 절실히 실감한다.

고급 부띠끄 샵들과 눈부신 성당, 기절한 만큼 멋진 조각상들과 엄청난 규모의 분수쇼들. 쓰레기 한조각 없던 거리, 계산에 정확한 사람들... 약 80일간의 유럽 여행기간 동안 그 모든 깨끗함과 정확함에 나는 아마도 지쳤던 걸까.. 조금은 어설프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친절한 이 아프리카 사람들이 난 더 알고싶어지기 시작했다 .

출근시간 교통대란으로 거의 8시가 다 되어 만난 파울린은 깨끗한 쵸콜릿 피부에 머리를 길게 땋아내린 전형적인 흑인 여성.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지만, 대학생처럼 어려보인다. 남편 말로는 흑인들은 늙어도 주름이 안 생긴다고 하길래, 그녀에게 진짜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주름이 생긴다고 대답한다. 80살 넘으면. ㅡㅡ;

우리의 로마에서의 배낭 털린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입을 벌리며 오마이갓을 연발하는 파울린. 어느새 그 사건은 우리에게 한낱 재미난 수다 소재가 되어버린 듯 하다. 역시 시간의 힘이란... 그러자 파울린이 이 곳 나이로비는 치안이 유럽보다 훨씬 괜찮다고, 누구든 조그만 소리라도 지르면 주변 사람들이 다 쫒아가서 때려준다며 몸 동작까지 해가며, 걱정 붙들어매란다. 발로 차고, 큰 돌로 찍어버린다고. (험험;;)  경찰들도 최근에는 무척 열심이라는데, 나이로비는 나이로버리라는 악명을 씻어버리려는 나라의 움직임이려나!

파울린이 티비를 켜자, 영어부터 흘러나온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케냐는 현재 두 개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스와힐리어와 영어.
바로 옆동네 국가인 탄자니아는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케냐 정부는 빠르게 영어를 보급시켰고 이는 케냐의 경쟁력이 되었겠지.

택시 운전사 아저씨도 영어 좔좔..

오후 3시까지 한숨 푹자며 여독을 푼 우리는 본격적인 나이로비 시내 탐험을 나섰다.
첫 번째 과제는 “버스타고 시내입성하기”.

집을 나서자마자 뿌연 매연과 흙먼지들이 거리를 메우고 사람들은 우리를 힐끗힐끗 보며 눈마주치면 웃느라 정신이 없다. 파울린이 분명 “퍼플 버스”를 타라고 했는데... 여기저기 그린버스들이 눈에 띈다. 그 때 사람들을 가득채워 버스문에 승무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린버스가 우리앞에 선다.

“어디가!”
“시내, 힐튼호텔”
“이거타~”
“우린 퍼플버스 기다려~”
“이게 퍼플버스야!”

딱 봐도 초록색인데... 보라색 버스랜다.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와서 Jay와 눈 마주치고 탑승을 결정한다. 초록버스도 가긴 가는데 멀리 세워준다고 했으니 턱없이 잘못탄 건 아닌 셈이다. 초록버스는 20실링, 퍼플버스는 50실링. 돈도 아꼈다.

힙합음악이 쩌렁쩌렁 나오는 로컬버스에 꽉 찬 사람들. 울퉁불퉁한 도로위를 질주하는 문짝도 제대로 없는 이 귀여운 컬러풀한 고물차와 그 속에서 이리저리 몸은 쏠리고.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이 곳에는 정류장이 따로 없다. 사람들이 내리려고 준비하면 승무원남이 버스를 땅땅 때리고 버스는 서서히 속력을 낮추면 승객은 뛰어내리면 되는 시스템. 아마 며칠이 지나면 나 역시 뛰어내리기가 익숙해질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정류장’을 거쳐 드디어 좌석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 때 였다.

머리끝을 누군가 만지기 시작했다. 티 안나게 살살.
아마 내 머리카락이 신기했을까. 다들 레게머리나 꼬불꼬불머리인데 .. 뒤돌아보면서 씩 웃으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차에서 내리자 우리쪽 창문으로 웃으며 쳐다보길래, “바이~” 하며 손 흔들었더니, 서로 쿡쿡 찌르고 활짝 웃으며 손을 180도로 흔들어댄다.

아, 이 착한 느낌!

파울린과 힐튼 호텔앞에서 만나 (나이로비에서는 힐튼 호텔 앞이 일종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다) 공원을 가고, 스와힐리 레스토랑도 구경하고, .. 돌아올 때는 초록버스를 함께 탔는데 출퇴근 시간은 40실링. (2배로 급 상승)

집에 돌아오자 파울린은 옷도 갈아입지않고 정장 상태로, 우리나라 감자탕같이 생긴 아프리카음식을 해주기 시작한다. 소고기랑 야채들이랑 ..케냐 쌀에 쓱쓱 비벼 맛있게 먹고 수다떨고.. 피곤이 몰려와 잠을 자려하는데, 자꾸 우리에게 본인 침실에서 자라고 성화다. 본인은 거실에서 매트리스 깔고 자겠다고..

무슨 소리냐고 남편은 거실 소파위에서 잠든 척하고, 난 저 남자 코고니까 내버려두고 우리둘이 침실에서 자자 하는데도.. 한사코 거실에서 자겠댄다. 손님이 없을 때도 본인은 가끔씩 거실에 널부러져 잔다면서 .. 모기가 많아서 우리보고는 거실에서 자지 말래놓고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신혼부부라 배려를 하는거겠지 싶으면서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맙다. 결국 파울린 고집을 꺽지 못한 우리는 하얀 모기장이 예쁘게 쳐진 침실에 들어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따뜻한 차 한잔이 마시고 싶다. 부엌으로 잠깐 가서 어제 먹다 남은 차가 있으면 데워먹을까, 아니면 가방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꺼내 먹을까 생각하고 있는데...그 때 내 눈에 띈 거실 티비 앞, 빨간 보온병에 가득 담긴 차이,
그리고 두 개의 커피 잔.
그녀는 출근 전에, 우리를 위해 따뜻한 차와 빵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였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파울린은 피부도 깨끗하고 유머도 넘칩니다.

하지만 가끔씩 그녀의 눈 속에 스치는 쓸쓸함 혹은 깊은 생각.

그녀는 사실 여섯 살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남편은 임신 2개월째에 버스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의료회사를 다니며 꿈을 꿉니다.

내 회사를 세워 좋은 의료기기를 세계 각국에 팔겠다는 꿈.

하지만 아프리카 남자와 결혼하면 그 꿈은 아주 멀리 멀어집니다.

그 남자는 파울린 외에도 둘째 셋째 부인을 얻을 수도 있고,

그녀를 때릴 수도 있습니다.

바람을 피우고 당당히 집에 들어와 밥을 차리라고 하겠죠.

하지만 어떤 여자도 거기에 대항하지 못합니다. 그게 아프리카니까

그래서 파울린은 “난 절대 아프리카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꺼야!” 라고 외칩니다.

그녀의 좋은 남자 기준은 하나.

“집에서 요리를 하는 남자!”

그래서 우리 남편 Jay는 파울린에게 단박에 점수를 땄습니다.

근육질 팔로 식사에 설거지까지 해주는 남자니까. ^^

소파하나 겨우 들어갈 거실이지만 그 한벽엔 커다란 정원 딸린 주택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녀의 꿈.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족을 이루길....


파울린언니 ! 고마워!
아프리카에서 만난 첫번째 따뜻한 마음 , 잊지않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