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캄보디아

드럽고 치사빤스인 '베트남-캄보디아 국경넘기'

Joy_girl 2011. 5. 15. 18:08

버스로 국경을 넘는게 어디 처음인가.

태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우리는 국경을 넘나들었다.
국경을 넘는다는건 단 오십여걸음으로 문화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사람의 웃음의 색깔이 바뀌고,
성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국경을 넘으면서 난 시종일관 기막힌 표정으로 국경을 넘어야했다.

아침 7시반, 베트남 사이공에서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그리고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버스 안내원은 탑승객들의 여권을 수거해가며 25$을 요구했다.
캄보디아 여행비자가 20$, 사업관련비자가 25$.

사람들은 군소리없이 25$씩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굳이 둘이 합해 10$을 수수료로 더 낼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 금액이면 캄보디아 숙소에서 1박을 더 잘수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젊고 앞으로 받아야할 비자가 산더미였으므로 우리가 할테니 괜찮다고 했다.
안내하는 그 버스총각은 그러면 오래걸린다며 버스는 15분 밖에 기다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저 베트남 국경을 넘으며 도장을 받고, 캄보디아 국경에서 비자를 받으면 되는 쉬운 일이었다.
굳이 맡길 필요가 없었다.
나와 같은 버스에 탄 관광객들도 국경검문소를 어짜피 지나가야하니까.

그러나...
결.코.그.렇.지.않.았.다.

베트남 국경 검문소.

우린 이곳을 빠져나가야했다. 저 버스 안내남보다 빨리.
우리 여권에 경찰옷을 입은 검문소 직원이 사인을 하고 날짜도장 꽝하고 찍어주면 우린 베트남을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줄이 없다.
표정하나 없는 군복의 남자들 4명이 검문소에 앉아 책상위에 잔뜩 쌓인 여권에 도장을 찍고 있고,
사람들은 버스안내남이 이름을 부르면 그 곳을 빠져나간다.

이게 무슨 시스템이지?

놀라 두리번두리번하는 나의 여권을 가지고 남편이 한 곳에 가서 우리의 여권을 디밀었다.
한번 쓱 쳐다보더니 그 살찐 군복남자는 다른 곳을 가르킨다.
그 다음 검문소 직원은 또 다른 곳을 가르킨다.
그 다음. 그 다음. 다시 제자리.

돌리고 있다.
이 나쁜..  못된 사람들이 우리보다 늦게 온 다른 가이드들이 내민 십여개의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대면서,
우리 건 임의로 책상위에 보란듯 버려두고 있었다.

남편이 처음 여권을 내밀었던 그 곳으로 간다.
' 저쪽에서는 이쪽에서 하래요' 남편의 영어.
살찐돼지같은 그 사십대의 군복남은 '저쪽으로 가서 하라고!' 라는 듯한 베트남어로 소리를 지르며,
여권을 책상위에 던졌다.

아..

장난이 아니구나. 미쳤구나.
남편에게 우리 여권을 던지는 모습을 보자 너무 화가나서 가슴에서 열불이 뻐쳤다.
아무 잘못한 것 없이 우리의 것은 내동댕이 쳐졌다.

내가 여권을 챙겼다.
남편은 감기에 탈까지 나서 그적게부터 거의 한끼도 못먹고 계속 아픈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저 무거운 백팩을 지고 이리저리 돌고있다.
아니, 돌려지고 있다. 허탈한 표정의 남편. 이미 그도 나도 패닉 상태였다.

난.중간에 있는 군복남에게 갔다.
역시,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없는 여권이나 다름없다. 안 보이니, 이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
내 뒤에 온 이십여개의 필리핀 여권과, 중국 여권들이 한 순간에 처리되어 나아간다.
"내가 먼저왔어요" 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남자, 날 쓱 쳐다보더니 ..
정.말.어.이.없.게.도.
또 다른 곳을 가리킨다. '아.........'

그 때, 우리 버스의 안내남이 내 건너편으로 왔다. 손가락질 하며 내가 말한다.
"찍어줘.. 나 저 버스 타고 왔다고"
안내남도 같이 말한다.
"얘네 우리 쪽 맞어, 찍어죠.." 둘 사이의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그리고....
쾅.쾅. 도장이 찍혀나왔다.

의심할 것도 없이, 결탁이다.
여기저기 돈 띄어주면 안내남에게 남는돈도 많지 않겠다 싶었다.

안내남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땀흘리며 도장을 받고 있었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경험이라 생각해요, 경험 .. "

그렇게 힘들게 넘어간 캄보디아는.


뻔히 본인들 머리위에 "20$" 이라는 팻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각각 22$의 비자피를 요구했고.

100$을 내자, 56$을 건내주었다.
어디서 잘 못 배운것 같은 한국말로 "빨리빨리" 를 연발하며,...

우리 베트남도 넘어왔어. 이 더위에 우리가 왜이렇게 힘들어야 하는데.
느네한테 당할 거면 처음부터 안내남에게 수수료 줬을거야.
난 남편을 불렀다. 난 그들에게 여자따위이니까.
남편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60$이 돌아왔다.

단 십 불.

우린 그 십불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샀다.
그들은 공산당임에도 부패하고 부패했다.
베트남 정부와 캄보디아 정부에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하자,
그는 아무 소용없을 거라는 듯 빈 웃음을 지어보였다.

베트남에서는 페이스북이 막혀있다.
정부는 베트남 국민들이 세계와 소통하기를 원치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블락킹을 풀어 페이스북을 쓰고 있으며,
오직 여행자들만이 갑자기 페이스북이 안된다며 서로에게 질문을 해대고 있다.

이 나라들이 발전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겠지.
하지만 우린 그걸 뛰어넘었어.
아직도 수많은 국가들이 이 시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못사는 나라로 정체하고 있다. 
십년 이십년 후의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중에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도장이 찍혀나간 여권들에는 갈색지폐가 꽂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군복입은 남자들의 손을 거치면 돈은 없어지고, 여권만 남겨지는 거지..
남편은 알면서도 돈을 꼽지 않았다.

서남아시아의 마지막 기착지인 캄보디아.
우린 끝까지 정직하게 여행하겠어.
정직이 만드는 한나라의, 한사람의 발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